마지막 올림픽
하지만 그들에게는 마지막이 아닌 이유

이채원 X 이승훈

# 1

"채원아, 너 정말 잘 뛰는구나,
혹시 스키한번 타보지 않을래?“
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소녀는
달리는 것이 무작정 좋았다. 그 소녀의 인생을 바꾼 것은
체육 선생님의 한 마디였다.

# 2

크로스컨트리를 처음 만난 시골 소녀 21년 전, 강원 평창군 대화중 1학년 이채원은 크로스컨트리가 뭔지도 모른 채 스키부에 들어갔다.
"당연히 알파인 스키인줄 알았어요.”
스키를 신고 오르막을 달려야 하는 종목은, 체력엔 자신 있던 이채원에게 딱 맞았다.

# 3

2년 만에 한국 크로스 컨트리의 간판이 됐다. 중3 때 첫 우승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국체전에서 딴 금메달은 67개.
19년 선수생활 중, 개인 종목에서 한 번도 2등을 한 적이 없다. 하지만, 어디까지나 국내에서의 이야기.
세계무대에서 그녀는 랭킹 100위 밖, 이름 없는 선수에 불과했다.

# 4

신장 153cm, 체중 45kg.
신체 조건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2배 더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. 그녀는 딸 은서를 낳기 한달 전까지, 임신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. 매일 50km를 달리는 혹독한 훈련을 주변에서 하지 못하게 말릴까봐.
"쉬면 안되는데, 운동을 해줘야 하는데…"

# 5

2011년 카자흐스탄 동계아시안게임 이채원은 마침내 한국 크로스컨트리 역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. 올해 36세 나이에도 날이 갈수록 기량이 발전하고 있는 그녀는2017년 2월 평창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 월드컵에서 12위로 역대 최고 성적을 달성했다.

# 6

평창은 1981년 이채원이 태어난 곳이고, 또 처음 스키를 시작한 곳이며, 그녀가 '마지막' 올림픽에 도전하는 곳이다.
올림픽 최고 성적은 45위. 그녀에게 최적화된 평창의 설질(雪質)과 경기장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20위권 진입에 도전한다. 어쩌면 그 이상의 성적이 나올지도 모른다.

# 7

22년간 짊어졌던 한국 크로스컨트리의 '간판 '은 이제 이채원의 어깨를 떠난다.
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번 올림픽이 '끝'이 아니다. 언젠가는 이채원을 넘어서는 후배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.
"딸에게는 절대 이 운동을 안 시킬 거에요. 너무 힘드니까. 하지만 제가 중1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, 다시 스키부 문을 열 거 같아요. 왠지 그래요 ."

그리고, 빙상 위를 달려온 한 소년

# 8

초등학교 시절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을 병행했던 이승훈이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“쇼트트랙만 해야겠다”고 다짐한 이유는 다름 아닌, "덜 추워서"다. 하지만 이승훈의 마음속에는 다른 꿈이 자라고 있었다. 쇼트트랙에 ‘동성이형’ 같은 걸출한 스타가 있다는 건 그에게 끊임없는 자극이 됐다.

# 9

예상보다 쉽지 않았다.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쇼트트랙으로 줄줄이 입상하던 그는 정작 올림픽 국가대표에는 번번이 떨어졌다. 2010 밴쿠버 올림픽을 위한 선발전에도 그는 그토록 꿈꾸던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.

# 10

이승훈은 얼음 위로 돌아왔다.
2009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졌지만, 7개월의 공백 기간에 몸을 다시 만들었다. 그리고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꿨다.
‘반전 카드’를 쓴 셈이다.

# 11

롱트랙 전용 스케이트도 없어 다른 이의 스케이트를 빌려 신고 간 캐나다 전지 훈련에서 이승훈은 올림픽 진출의 꿈을 키웠다. 그때부터 '스피드 스케이팅 황제'의 역사는 시작됐다. 2010년 밴쿠버에서 10,000m 금메달, 5,000m 은메달. 화려한 전향이었다.

1위

2016~2017 ISU 월드컵 시리즈
매스스타트 랭킹

# 12

세 번째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는 이승훈 선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새롭게 채택된 매스스타트 경기에 출전. 매스스타트가 이승훈에게 유리하다고 하는데 이유는…

# 13

직선에서 속도를 내는 스피드 스케이팅, 그러나 코너에서 더 빠른 이승훈 “코너에서 상대를 추월하는 테크닉. 그 부분에선 제가 한수 위라고 생각을 해요.
쇼트트랙을 하면서 상대를 추월할 때 가속하는 테크닉이나 쉽게 앞 선수를 쫓아가는 능력들은 쇼트트랙을 하면서 그냥 몸에 배게 된 것 같아요.”

# 14

선수들 중 최고참인 이승훈은 갓 5개월 된 '신참' 남편이기도 하다. 지난 6월 이승훈과 결혼한 아내 두솔비 씨는 "마냥 기다리는 아내가 아닌, 자기 할 일 잘 하면서 걱정하지 않게 해주는 아내"다. 본의 아니게 신혼을 반납한 건 이승훈에게도 아쉽다. 그래도 얼음 위에서 집중하는 게 본인의 업(業)임을, 그도 아내도 믿고 있다.

3번째 동계올림픽 출전,
이승훈에겐 어떤 의미일까?

# 15

마지막일 수도 있는 올림픽. 이승훈은 담담하게 훈련에 임한다. "훈련 나가기 전 아침 먹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. 식사하고 운동 가기전에 커피 한잔 마시는 그 때 느낌이, 너무 좋아요"

대한민국의 승리의 부담감을 어깨에 진 그들, 그들에게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홀가분한 단어가 아니다.